복잡계와 창발성 유도
https://substack.com/home/post/p-176383335
고등학생 때 다체문제, 게임이론에 대한 레포트를 쓴 적이 있다. 그냥 깔끔하게 몇십 줄 코드로 구현하고 그에 관한 레포트를 썼는데, 요지는 다음과 같다.
‘단순한 규칙이 창발성을 낳는다’
실제로 다체 문제는 간단한 물리학에 기반한다. “3개 이상의 물체가 상호작용할때 해석하는 일반 해가 존재하지 않는다.” 각 물체는 질량을 가지고 가속도를 가진다. 그리고 물체 가속도에 2번 적분을 하면 위치가 나온다.
되게 간단한 이론이고 이를 구현하는 해석학 코드를 작성하면 금방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있다. 그러나 t=n 시점의 위치를 구할 수는 없다. 단순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내놓는다.
이런 시스템은 물리학 외에도 경제, 사회, 정치, 컴퓨터등 모든 분야에 존재한다. 모든 물체가 모든 물체에 영향을 주는 시스템이라면 이런 다체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 실제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명시되기에 규칙은 단순하게 표기된다.
고로, 우리 사회는 단순한 규칙 하에 복잡한 결론을 내는 시스템이다.

요즘들어 단순함을 중요시하고 있다.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천재들, 세상을 바꾼 괴짜들. 남들이 보았을 땐 복잡한 결과로 비치지만 그 결과는 창발성 이후의 결과일 뿐 실제로 창발성을 유도한 이론은 단순하다.
만약 당신 스스로가 천재라 자부한다면 머릿속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가장 단순한 이론만 남기고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무엇에 집중할지 어떻게 해석할지, 어떤 관점으로 대응할지는 이후의 선택이다. 이론은 단순해야 하지만 각 이론하에 행동을 만들고 그 행동이 다른 행동에 영향을 주어 창발 되는 과정을 거친다면 이론의 목적은 창발성이 만들어내는 범위 내에 걸칠 확률이 높다.
이론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어찌되었든 정의되어 있다. 가령 100억 자산이나 결혼등이 될 수 있다(보편적인 목표가 아닌 개인이 설정한 목표). 그러나 그 이론으로 가는 최적의 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론이 존재하는 방향 또한 결정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론을 달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능한 한 모든 경로를 탐색하는 일이다. 이 방법이 최적의 해를 알 수 없는 혼돈 상황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한 번에 하나씩 탐색하려 한다면 장담컨대 평생을 살아도 도달할 수 없다.
그렇기에 모든 행동은 가능한한 모든 행동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 앞서 정의한 대로 행동은 단순한 이론에 근거해야 하며 단순한 이론이 만들어낸 행동이 내 과거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에도 영향을 주어야 한다. 이는 복잡한 결과를 낳는다.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단언컨데 단순하게 도출된 결과는 1) 수렴되거나 재정의된 결과 거나 2) 별 쓸모없는 연역적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1번 결과일 경우 결과가 곧 이론이 될 수 있다. 일종의 명제로 작용한다. 2번의 경우 남들도 다 알고 있는 무시되는 명제일 가능성이 높다. 가령 1+1=2이다 처럼.
리처드 파인만은 강의 시작 전에 이렇게 말했다. 파인만 정도면 단순하게 과학을 서술할 수 없겠냐는 질문에,
“여러분 앞에는 지난 수십년간 쌓여온 과학 이론이 있습니다. 이를 단순하게 설명하는 과정은 없습니다.”
단순함은 비약을 낳고, 비약은 오류를 낳는다.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 연역적 단순함만으로 진전한다면 아마 인류의 과학은 그냥 과거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단순한 결과는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뉴턴의 단순한 이론인 f=ma는 단순하지만 이를 이용한 다체문제는 복잡한 결과를 낳는다. 아인슈타인의 e=mc^2은 단순하지만 질량을 가진 무언가가 빛의 속도에 근접해서 이동한다면 기하급수적인 무게 증가를 낳는다는 해석도 된다. 이걸로 원자폭탄도 만들 수 있고 우리 세상의 에너지와 빛의 관계를 규정할 수도 있다.
여러 단순한 이론으로 시작해서 복잡한 해석 과정과 적용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새로운 관점이 생긴다. 그러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은 더 다채로워지고 아름다워진다. 극단적인 명제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재치도 생기고 때로는 남들을 배려하고 복잡한 사회 현상을 스스로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현명함도 기를 수 있다.

때로는 그런 현명함을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일도 생긴다.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등. 아주 좋은 선택이지만 극단적으로 간다면 성공팔이와 같은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흔히 성공팔이 강사들이 이야기 하는, 뭘 하면 월 1000 같은 소리는 앞서 언급한 2번 같은 쓸모없는 연역적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또 유명한 이야기인,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침에 이불부터 개야 한다는 말 또한, 이불을 개라는 명제가 아니라 사소한 일도 마무리 지으라는 숨겨진 명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성공팔이들이 이야기 하는 구체적인 행동은 솔직히 말해 별 쓸모가 없다. 대신 그걸 하기 위한 단순한 명제에 집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투자를 잘하기 위해서는 일단 직장에서 시드머니를 모으세요’와 같은 말은 큰 에너지를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명제로 귀결되고, 이는 원자폭탄을 만들 때 임계점을 맞춰야 한다는 명확한 정의로도 창발 된다. 이론이란 일반화된 명제다.
인류가 가진 불안함 또한 같은 매커니즘이다. 일단 인류라는 종 자체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나를 믿지 못하니 다른 사람 혹은 개념에 의존하게 되고 또 그게 틀릴까 두려워서 불안해한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나지막이 상상해 보니 결과가 좋지 않을 거 같아 애초에 시도조차 안 하게 된다. 솔직히 인류의 상상력 또한 인류가 가진 시공간적 제약의 트레드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천재적인 도구이고, 조금 머리가 좋다면 남들보다 상상력이 뛰어날 테니 앞으로의 일을 미리 선명하게 예견하게 되고 미리 불안해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제발 불안해하지 말고 이론으로 정리해두어야 한다. 천재적인 머리 뒀다가 쓸데없는 상상력에 투자하지 말고 현재를 정의하는 나의 관점으로 승격시키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보면 대게 애매한 경우가 많다.
나름 좋은 학교에 진학해서, 나름 좋은 기업에 20대 후반에 취직하고, 나름 잘 하다가 뭐 하나라도 놓치면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다.
차라리 다 공부든 학교든 싹다 놓아버리고 내가 하고 싶은 거에 집중한 사람들이라면 남아도는 시간이 주는 재능으로 내 일을 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해서 신나게 밥 벌어먹고 살 텐데.
우리의 삶은 직렬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기회가 몰아닥치기도 하고, 과거에 했던 선택이 오늘에 선택에 영향을 주어 새로운 창발성과 기회를 만들어낸다.
보다 이론에 근거해서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론과 행동을 믿고 그 이론이 충분한 창발성을 만들어내기에 용이하다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특히나 창업과 같은 처음부터 복잡계에 해당하는 게임이라면 더더욱. 애초에 목표를 잡는것 부터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이 경우에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그냥 평범한 멘탈이라면 어중간하게 “나는 버틸 수 있다” 하는 것보다 “난 지금 불안하다”라고 인지하는 게 더 좋은 멘탈 관리 방법일 수도 있다. 불안함을 인지하면 일단 뭐라도 하게 되니까. 괜히 불안감을 떨쳐내는데 집중했다가 과하게 몰입해 버리면 과한 자기 연민에 사로잡혀버린다.
그런 자기연민,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안되지?”와 같은 다른 사람에게 동정을 얻으려 슬프거나 우울한 감정을 증폭시키는 행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어렸을 때 가난했거나, 원하는 목표가 있는데 너무 오래 걸리거나,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이 있어서 반드시 성공해야 하지만 지금은 우울한 감정.
그런 감정은 이론화할 수 없으며 따라서 애초에 별 신경쓰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인간이기에 갑자기 이 감정에 사로잡힐 수는 있지만 그걸 무관용 관점으로 시각화해서 받아들이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본인의 실패와 감정에 너무 주관적으로 몰입하지는 말자.
지금 목표에 긍정적으로 몰입하고 하루하루에 성실하게 임하는 태도가, 그러면서도 모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지는 말고 집중할 섹터를 정하는게 중요하다. 내 경우 학교와, 쓸데없는 인간관계를 비롯한 꽤 많은 분야를 버렸고, 소프트웨어 분야와 철학 정도에만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지는 않았다. 김영하 작가의 말 처럼 100% 최선을 다하면 지친다. 최선을 다해도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분야 혹은 조직이라면 계획에 따라 가차 없이 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학교의 경우 상한선이 정해져 있고 수능이라는 명확한 목표 아래에 있지만 수능 자체는 대학에 목표가 있고 대학은 또 취직에 목표가 있다. 이 과정에서 지식과 행동은 마치 깔때기에 걸러지듯이 수능이 곧 취직으로 잘 연계되지 않는 것처럼.
몇 가지 분야를 정해 몰입하고 창발을 유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 번에 하나씩. 시간을 뛰어넘어 연결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