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Jun Huh

틀려도 괜찮다. 어짜피 모르니까.

틀려도 괜찮다. 어짜피 모르니까.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AI의 등장, 고용 불안정성, 취직 걱정등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세상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FOMO를 느끼기도 전에 압도되어 버리는 이런 경험은 꽤나 착잡하기만 합니다.

이럴때일수록 과감하게 도전해야 하는데 내가 틀릴까 봐 불안한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어차피 아무도 모른다”

사실 이런 문제는 이미 몇 십 년전 철학자들이 해답을 내놨습니다.

100년 전 양자역학이 태동하던 시기 철학은 여전히 뉴턴 시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물리학은 모든 것에 대한 이론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수학은 완전하다는 믿음. 철학은 이런 흐름 속에서 ‘세상은 논리로 설명 가능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러다가 양자역학이 나오면서 철학은 흔들리게 됩니다. 이전까지 현상과 관찰은 분리된다는 데카르트식 이분법에 종속되었다가, 관찰에 의해 현상이 바뀌는 양자역학을 보며 현상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게 됩니다.

수학도 괴델의 불완정성 정리로 인해 큰 결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고요. 철학은 이제 어디에도 기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뇌과학 이론인 뇌는 패턴을 인지하는 게 아닌 끊임없이 예측한다는 이론도, 같은 현상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낳는다는 철학적 명제를 뒷받침합니다.

철학은 보편적인 탐구를 목적으로 합니다. 인류의 역사도 무엇이 옳은가와 같은 질문으로 끊임없이 대립해 왔고요. 그러나 지금 철학이 내놓은 답은 관점에 따라 국지적이고 분석적인 영역으로 옮겨 갔습니다. 애초에 보편성이란 불가능이라는 게 증명되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우리가 교육받았던 세상은 보편적이고 예측 가능하다는 믿음 하에 세워졌습니다. 한국의 교육 뿐 아니라 전 세계의 교육이 마찬가지고요. 이제는 질문을 바꿔서 특정 관점에서만 보편적인 지식을 배웠다고 말해야 할 듯싶습니다.

결국 답은 없습니다. 내 삶을 보편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려 하니 불안한 겁니다. 고로, 내가 정의한 성공의 관점에서 과감하게 도전한다면 내 행동은 정답이 됩니다.

내 고집대로,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길로 행동하세요. 그리고 책임지세요. 국가 혹은 사회 혹은 다른 사람이 삶을 책임져줄 수 있다는 나약한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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